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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최인호의 '인연'을 읽고

가끔씩 내가 글재주가 조금 있었으면 인생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전형적인 이과에서 생활을 하고, 지극히 산술적인 것을 선호하며, 개발과 사업기획 등을 업무로 하며 보낸 탓인지 장문의 글재주가 참 형편이 없는 편이다.

블로그를 통한 '인연(!)'이 닿아 분수에 맞지 않게 가끔씩 기고를 하거나 외부 보고서를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구성력와 자료를 정리하는 재주가 조금 있는 덕분이다. 간혹, 이과인데도 불구하고 화려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부럽기가 짝이 없다. 지금 가지고 있는 구성력과 시장 경험에다가 글재주까지 있었으면, 조금 더 재미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선물로 받은 최인호의 작품은 또 다시 글재주에 대한 시기를 갖게 하였다. '인연'은 총 43편의 단편글이 아무런 상호 연결도 없이 묶여 있는 에세이집이다. 전체 구성으로 볼 때 플롯과 플롯의 연결고리가 아무것도 없는 이 책이 어지럽지 않고 쉽게 읽혀지는 것은 작가의 글솜씨 때문이다.

소설가 최인호는 이 책에서 다양한 대상물에 대한 인연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족, 친구를 비롯해서 다양한 사물과 풍경, 심지어는 '적막'과의 인연까지도 풀어해치고 있다. 이렇게 사소한 인연에도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풀어 낼 수 있는 것은 사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고, 그를 표현할 줄 아는 글솜씨 덕분이다.

항상 Cyber 세상에서 각각의 개인에 대한 Relation을 통한 '인연'을 만들어주는게 직업인 내가 실제 생활에서의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얼마만큼 경시하고 있는지 반성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아침마다 콩나물처럼 채워진 버스부터 새벽에 울리는 서비스 장애 전화벨소리까지 그 모든 것은 내 삶을 지탱하는 '인연'일런지 모른다.

책을 읽고 검색을 하고서야, 초등학교 때 매달 아버지가 사오셨던 '샘터'의 '가족'을 연재하던 작가가 최인호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로 인한 기억의 실타래 또한 내 유년시절의 인연을 떠올리게 하였다. 작가는 현재 암투병이라고 한다. 쾌차하기만을 바랄 뿐이다.